국내 세입자 증가에 중국 등 유학생 수요 겹쳐 악순환 한 임대주택 인스펙션 무려 70~250명 경쟁
멜번 임대시장에서는 임대비 상승 속에 역대급 세입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출처 AAP)
호주중앙은행(RBA)이 2월 7일 기준금리를 지난해 5월 이후 9번째 연속 인상하면서 기준금리가 2012년 9월 이래 최고 수준인 3.35%로 올랐다. 아직 내집 마련을 못한 실수요자들이 높아진 대출금리를 감당하며 주택 구매에 나설 여력이 더욱 줄었다. 그런 가운데 공실률이 1%대까지 떨어진 멜번 임대시장에서는 치솟는 임대비 속에 역대급 세입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포털 도메인(Domain) 자료에 따르면 1월말 기준으로 멜번의 임대시장 공실률은 1.4%에 불과한 상태이며 아파트 임대비 중간값은 지난 1년간 20%가 오른 $450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 센서스 자료에서 멜번의 주급 중간값이 $1,250임을 감안하면 평균소득을 버는 독신자 가정은 총수입의 1/3 이상을 임대비로 지출하는 셈이다.
지금과 같은 '임대인(landlord) 시장'에서 월기준 임대비를 한번에 $300 이상씩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물 사전 점검 이른바 인스펙션이 집중된 토요일 오전과 이른 오후 시간대 멜번 도처에선 매물을 보기 위해 수십명의 예비 임차인들이 길거리까지 길게 줄을 서 대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글렌웨이벌리 레이 화이트 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인스펙션 때마다 70명에서 많게는 250명의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고 밝혔다.
빅토리아주 주택 임차인들에게 무료 법적조언 및 분쟁 발생시 민사행정재판 지원 등을 제공하는 빅토리아 세입자연맹(Tenants Victoria)의 패러 파로크 대표는 “저소득층과 정부의 복지수당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타격이 특히 심각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안정적 직업과 수입이 있는 사람들에게조차도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고 지적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 멜번의 임대 시장은 마치 '지옥과 같은(hellish)' 상황처럼 느껴지고 있다”고 비유했다.
"집 주인이 지난해말 임대료를 월 $1,800에서 $2,046으로 올렸다. 아이들 옷이 작아져도 새 옷을 사줄 여력이 없다. 나 역시 제대로 먹지 못해 체중이 줄고 있다. 아이 한 명이 최근 자폐증 진단을 받았는데 소아과 전문의를 찾아가고 싶어도 진료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 자넷(보조교사)
"지난해 말 살고 있던 아파트를 비워 달라는 통고를 받았다. 일하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갈 곳을 찾는데 소모했고, 하고 있는 일 이외의 모든 생각은 온통 집 찾는 생각뿐이었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옮길 곳을 찾아야 한다는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너무도 압도적이었다.” – 알렉스(그래픽 디자이너)
"소득이 없거나 낮은 사람들에게 있어 렌트를 찾는 건 수치스러운 경험이다. 렌트 신청서에 직업이 없다고 표시하면 그 어떤 부동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모두가 나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 애니(무직)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그래탄연구소의 브렌든 코츠 경제정책 프로그램 이사는 “특히 팬데믹 기간 중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홈오피스의 수요와 셰어하우스 또는 부모 집에서 살던 이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독립하면서 주거 수요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은 이 같은 트렌드로 인해 총 14만채의 신규 주택 수요가 발생했으며, 팬데믹 기간 중단된 이민자ㆍ유학생 유입에 따른 인구 증가 감소를 상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코츠 이사는 심지어 호주로의 이민자가 전무한 상태에서도 기존의 주택 시장 내 수요는 증가했다며 최근에는 입국하는 이민자수가 폭증하면서 제한된 임대 매물을 놓고 많은 이들이 경쟁을 벌이는 일종의 '헝거 게임(hunger game)'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방 정부는 당초 2022/23 회계연도 중 이민자 순유입이 18만명에 이르고, 2023/24년 21만3천명, 2024/25년에는 23만5천명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짐 차머스 재무장관은 지금의 추세로 볼 때 이 수치는 상향 조절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탄연구소에 따르면 해외유학생들의 온라인 학위취득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최근 중국 교육부의 결정으로 앞으로 몇달간 최대 4만명의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호주로 귀환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통해 2만채에 달하는 추가적인 신규 주택 수요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리얼에스테이트닷컴(Realestate.com)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이 웹사이트를 통한 해외로부터의 임대 매물 검색은 전월대비 102%, 전년 동기대비로는 무려 213% 증가했다. 특히 가장 많은 검색이 이뤄진 국가는 중국으로 검색량이 한달사이 3배 가까이 폭증했으며 2위인 홍콩은 224%, 3위인 인도로부터는 122%가 늘었다.
신규 이민자와 유학생들 모두 호주에 처음 도착해 바로 주택 구매에 나서기 보다는 임대주택을 구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들의 합류는 이미 치열한 임대 시장 경쟁을 한층 더 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빅토리아주가 해외로부터의 전체 임대매물 검색의 30%를 차지한 가운데 가장 많은 검색이 이뤄진 지역은 멜번 CBD였고, 멜번대와 모내쉬대 메인 캠퍼스가 있는 칼튼(Carlton)과 클레이튼(Clayton)이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4위는 사우스뱅크(Southbank), 5위는 도클랜스(Docklands)였다.
윤성호 기자 frontlines@hanhodaily.com
출처 : 한호일보(http://www.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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